고대 한국사에 대해서는 자료가 적고 확정적으로 말할 수 없는 부분이 많습니다. 이런 부분을 다룰 때 매우 중요한 것은 추측이 추측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입니다. 추측이 추측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리면 그 뒤의 추론이 모두 영향을 받기 때문입니다. A가 B라고 생각하고 A를 B로 바꿔가며 문제를 풀었는데 나중에 A가 B가 아니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면 A가 B라는 가정 아래 문제를 푼 것은 모두 헛수고가 됩니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원칙은 현실에서는 잘 지켜지지 않고 있습니다. 역사학계 안의 연구자들이야 어떤 추측이 추측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경우가 많겠습니다만 문제는 학계 안의 추측이 학계 바깥으로 새어나갈 때 그것이 추측이라는 정보가 소실되는 현상입니다. 예를 들어 전국 지방자치단체의 웹사이트에 있는 지역 소개를 보면, 자기 지역이 삼한의 무슨무슨 소국이었다는 식의 내용이 나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겠지만 삼한 소국의 위치 비정은 백제국이나 사로국과 같은 극히 적은 수의 예외를 제외하면 모두 굉장히 추정적이며, 전혀 신뢰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추정된다' 같은 표현을 쓴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런 '추정'이 어딘가 공신력 있는 자료에 적혀 있다면 그것이 확실한 사실까지는 아니더라도 맞을 가능성이 적어도 절반은 훨씬 넘는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저로서는, 예컨대 여수시가 마한 원지국이었다는 '추정'이 맞을 가능성이 틀릴 가능성보다 높다고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삼한 소국들의 위치와 비슷하게, '삼국사기' 직관지에 실려 있는 신라 관부들의 역할이나, 신라 금석문을 통해 나타나는 직명의 의미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추측들이 존재합니다. 이 글에서는 '삼국사기' 직관지 속의 평진음전(平珍音典)과, 진흥왕 순수비에 새겨진 급벌참전(及伐斬典)에 대해 다룹니다.
평진음전 이야기 (1) 사전이 우리를 배신할 때
'삼국사기' 직관지에 실린 신라 관부 명칭 중에는 한문으로 풀이되지 않는 난해한 신라 고유의 명칭이 섞여 있습니다. 지명과 마찬가지로 경덕왕은 신라 고유의 관부 명칭을 중국식으로 바꾸는 작업을 진행했고, 비록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이때 부여된 중국식 명칭은 신라 관부의 역할을 알아내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됩니다.
평진음전(平珍音典)은 그런 관부들 중 하나입니다. 경덕왕의 개명에서는 평진음전에 '소궁(埽宮)'이라는 이름이 주어졌는데, '소(埽)'라는 한자는 황하 정비 공사에서 일종의 방파제로 사용한 완충물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또 '육부성어'를 보면 소 위에 대를 지어 강물의 흐름을 바라보는 '소대'에 대한 설명이 실려 있기 때문에, 평진음전이 강물의 수위를 관찰하는 관부일 것이라는 추측이 제기되었습니다. 직접 확인해보지는 못했습니다만 1972년 '조선학보(朝鮮学報)'에 실린 미이케 요시카즈(三池賢一)의 논문이 이러한 추측의 시초인 것으로 보이며,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나, 신라 왕경의 실상을 다룬 비교적 최근의 논문인 전덕재 (2018: 19) 등에서도 그대로 계승되고 있습니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는 '평진음전'의 의미가 "신라 때에, 홍수 따위에 대처하는 일을 맡아보던 관아"로, 이 추측이 아예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인 것처럼 실려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추측에는 다소 문제가 있습니다. '소(埽)'가 황하 정비 공사에 사용된 완충물을 가리킨다는 내용은 명나라 말기의 '정자통'이나 청나라 때의 '육부성어' 등에 등장하는 것으로서 신라 경덕왕과는 시간 차이가 크기 때문입니다. '소(埽)'는 "(빗자루로) 쓸다"를 의미하는 '소(掃)'의 이체자로 쓰여 온 역사가 훨씬 길기 때문에, 평진음전의 중국식 이름인 '소궁'을 황하 정비 공사와 관련해 이해하려고 하기보다는 빗자루나 청소와 관련해 이해하는 것이 훨씬 합리적일 것입니다. '소(埽)'가 황하 정비 공사에 사용된 완충물을 가리킨다는 사전의 풀이를 보고, 시대나 다른 용법의 존재를 고려하지 않고 그것을 바로 소궁에 가져다 붙인 것은 전형적인 초보적 실수입니다.
'삼국사기' 직관지에 따르면 평진음전에는 간옹(看翁) 1명, 연옹(筵翁) 1명, 전옹(典翁) 2명이 배속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이 가운데 간옹과 전옹은 다른 관부에서도 보이는 범용적인 관원 명칭인 반면, '연옹(筵翁)'이라는 명칭의 관원은 평진음전에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연(筵)'은 대나무를 엮어 만든 돗자리를 뜻하는데, 이 또한 평진음전의 역할을 짐작할 수 있는 단서가 됩니다. 예컨대 '예기' 소의편에는 泛掃曰掃 掃席前曰拚 拚席不以鬣 "넓은 범위를 쓰는 것을 소(掃)라고 하고, 자리 앞을 쓰는 것을 분(拚)이라고 하는데, 자리를 분(拚)할 때는 빗자루를 사용하지 않는다"라는 구절이 있어, 고대 중국에서 바닥을 청소하는 예법과 자리를 청소하는 예법이 별개로 존재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평진음전이 궁중의 청소를 담당하는 관부였다면, 일반적인 청소를 관장하는 관원과 별개로, 더 특화된 업무인 돗자리의 청결을 관장하는 관원이 있었던 것을 쉽게 상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분들께서는 이것 역시 추측에 불과하지 않느냐고 생각하실지도 모릅니다. 타당한 지적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가능성이 낮은 추측을 가능성이 높은 추측으로 바꿀 수 있는 무기가 있습니다. 바로 '이름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평진음전 이야기 (2) 이름을 이해하는 것
예를 들어 이런 상황을 생각해 봅시다. 어떤 고대 사료에 A성과 B성이라는 두 성이 등장하는데, 고고학적으로도 해당 지역에서 해당 시대에 축조된 X산성과 Y산성을 찾을 수 있는 상황입니다. A성이 X산성이고 B성이 Y산성일 수도 있고, 반대로 B성이 X산성이고 A성이 Y산성일 수도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 누군가는 이렇게 주장할 수도 있습니다. "X산성의 규모가 Y산성보다 크기 때문에, 이름이 먼저 나오는 A성이 바로 X산성일 것이다." 그러나 규모가 더 큰 성의 이름을 먼저 언급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한편 또 누군가는 이렇게 주장할 수도 있습니다. "X산성은 조선 시대에 관아가 있었던 곳에 가까운 전통적인 중심지이기 때문에, 이름이 먼저 나오는 A성이 X산성일 것이다." 그러나 조선 시대의 관아 위치가 고대에도 중심지였다는 보장은 없고, 또 중심지였다고 해도 이름이 먼저 언급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물론 경우의 수가 두 가지밖에 없기 때문에 대충 찍어도 절반 정도는 맞겠습니다만, '사실에 가까운 것'으로 취급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름을 이해할 수 있다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만약 사료에 나타나는 A성의 이름이 "바닷가"라는 뜻이고, X산성은 바다가 보이는 위치에 있지만 Y산성은 그렇지 않다면 어떨까요? 우리는 조금 더 확신을 가지고 A성이 곧 X산성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평진음전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평진음전의 '평진음(平珍音)'이라는 이름은 현대 한국어에서 '먼지를 털다'라고 할 때의 '털다' (15세기 후기 중세 한국어 ptel-)의 고대 한국어 명사형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세상에는 동음이의어가 존재하기 때문에 고대 한국어 자료에 나타나는 모든 '평진(平珍)'이 반드시 '털다'에 대응한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만 (예를 들면 '삼국사기' 지리지 명주 고성군 偏嶮縣 本高句麗平珍峴縣의 平珍은 고대 한국어에서 '털다'와 발음이 완전히 또는 거의 같았던 '뻗다' < 후기 중세 한국어 pet-에 대응할 것입니다), "(빗자루로) 쓸다"를 의미하는 '소궁(埽宮)'이라는 이름과 함께 살펴본다면 우리는 평진음전의 이름인 '평진음(平珍音)'이 '털다'의 명사형에 대응하며 고대 한국어로 "청소"를 의미하는 단어였다는 데에 확신을 가질 수 있게 됩니다.
급벌참전 이야기
이 글의 두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은 '급벌참전(及伐斬典)'입니다. 급벌참전은 마운령 진흥왕 순수비에 새겨진 직명들 가운데 하나이며, 비문 내용이 거의 같은 황초령 순수비에도 해당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다만 마운령비와는 달리 황초령비는 해당 부분의 일부 글자가 지워져 판독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급벌참전이 어떤 역할을 담당하는지에 대해, 제가 확인할 수 있는 범위에서는 두 가지 추측을 볼 수 있었습니다. 첫째는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의 마운령비 국역문 주석에 있는 것으로, 급벌참전을 "국왕을 시종하는 근시직이다."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실린 것으로, "급벌참전은 왕의 순수 시 태만하였거나 잘못을 저질렀던 지방관·촌주(村主)·수가신료들의 잘못을 처벌하는 임무를 맡았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두 자료 모두 추측이나 추정이라는 표현 없이 급벌참전의 역할을 단정적으로 표현하는데, 둘의 내용이 서로 다릅니다. 제가 세상이 참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이유입니다.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서 제시하는 국왕의 근시직이라는 정의는 비문에서 급벌참전이 나타나는 위치를 근거로 한 추측으로 보입니다. 한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정의는 "베다"를 의미하는 '참(斬)'이라는 글자를 보고 "잘못을 처벌하는 임무"라는 다소 유쾌한 상상을 한 결과가 아닌가 합니다. 하지만 둘 다 별로 좋은 추측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급벌참전의 역할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급벌참(及伐斬)'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별로 어렵지 않습니다. '급벌(及伐)'은 현재의 경상북도 영주시에 해당하는 급벌산군(及伐山郡)의 이름입니다. '참(斬)'은 '삼국사기' 지리지에 나타나는 지명 접미사이며 "고개"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급벌참전은 죽령과 관련된 모종의 직명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다만 구체적으로 죽령과 관련해 어떤 일을 담당했는지를 알아내는 것은 까다롭습니다. 이름은 그 이상의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진흥왕 순수비가 세워진 시대는 신라가 죽령을 넘어 진춣한 지 오래 되지 않은 시점이므로, 죽령이 국경이었을 때에 존재했을 초소 등이 아직 유지되고 있었던 상태일 수도 있겠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죽령이 '삼국사기' 권32에 실린 제사를 지내는 장소들 가운데 하나라는 점을 생각하면 제사를 담당했을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도 있습니다. 국왕이 전통적인 국경을 넘어 새롭게 획득한 영토를 순행한다는 것에는 큰 상징적 의미가 있으며, 그런 순행을 하는 도중에 어딘가에서 제사를 치른다면 옛 국경을 상징하는 죽령만큼 적절한 곳을 찾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평진음전의 경우와는 달리 급벌참전에 대해서 우리는 추측에 그치게 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과는 달리, 우리는 추측을 추측이라고 분명하게 밝힐 것입니다. 아는 것을 안다고 말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하는 것이 학문을 다루는 데 있어 갖춰야 할 바람직한 태도이기 때문입니다.
근황과 부탁
지난번 글에서는 비자 관련 절차가 지연되어 난처한 상황에 처해 있음을 알리고 독자 여러분으로부터 후원을 모집했습니다. 많은 분들께서 후원에 응해 주신 덕분에 8월 월세나 지방세 등을 납부할 수 없는 위기 상황을 무사히 넘길 수 있었습니다. 후원해 주신 분들께 깊이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이번 글을 준비하기 위해 근황을 보고드리는 것이 늦어졌습니다만, 저는 지난번 글 이후 무사히 일본 출입국관리법 상의 '교수'에 해당하는 체류 자격을 부여받아 약 5개월 만에 국립국어연구소에서의 정상 근무로 복귀했습니다. 그러나 5개월의 무직 상태가 제 주머니에 남긴 상처는 매우 깊기 때문에, 이번달에도 다시 돌아오는 위기를 넘기기 위해 후원 모집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후원 모집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https://huisu.kr/support/ 페이지에서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상황이 어느 정도 회복되어 여유가 생기면, 역사언어학 입문부터 시작해 고대 한국어에 대한 새로운 연재를 시작하고자 생각하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께서 읽기 편하신 요일과 시간대를 알려주시면 정기 연재 계획에 참고하도록 하겠습니다. 항상 지켜봐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