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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엔] 딸이 결혼한다는데 그날 밤부터 잠이 안 와요
딸이 내년 봄에 결혼하겠다고 지난주에 상대를 데려왔어요
인사성 바르고 딸한테 잘하는 게 눈에 보이고 저희도 반대할 이유가 하나도 없는데
그 사람 보내고 나서 그날 밤부터 잠이 안 와요

사위 될 사람도 형편이 넉넉한 집이 아니에요
지방에서 올라와서 자취하는 청년이고 부모님은 편찮으신 아버님 약값 대기도 빠듯하다더라고요
저희도 지원해줄 형편이 못 돼요
남편이 오 년 전에 하던 가게 접고 나서 빚 갚느라 한참 걸렸고
지금은 아는 사람 밑에서 일당 받고 일해요
모아둔 건 애들 둘 대학 보내고 큰애 등록금 대출 갚느라 거의 다 썼어요

딸한테는 미안하다는 말이 입이 안 떨어져서
그냥 요즘 전셋값이 어떻고 신혼부부 대출이 어떻고 하는 얘기만 자꾸 하게 돼요
딸은 엄마 우리가 알아서 할게 진짜 신경 쓰지 마 하는데
그 말이 고마운 게 아니라 더 아파요
어릴 때부터 갖고 싶은 거 참는 게 습관이 된 애라 지금도 저러는 거 아는데 그게 마음에 걸려서요

사실 저도 그렇게 시작했거든요
스물여덟에 결혼할 때 양가 어디서도 한 푼 못 받았어요
반지하 전세 얻어서 살림 차렸는데 장마철마다 벽에 곰팡이가 피어서 애 낳고는 결국 빚내서 이사했고
예단이니 예물이니 아무것도 안 했어요
결혼식도 예식장 대관료가 평일 낮이 제일 싸서 화요일 오전에 했어요
그때 회사 동료들은 부모가 아파트 전세금 대주고 혼수 다 해주고 신혼여행도 보태주는데
저희 둘만 맨몸으로 시작하는 게 그렇게 서러울 수가 없었어요

신혼 초에 남편이랑 밤마다 라면 하나 끓여서 나눠 먹으면서
우리 애들한테는 절대 이렇게 안 물려주자 그 말을 몇 번을 했는지 몰라요
근데 이십 년이 지나서 결국 똑같은 자리에 서 있어요
딸 결혼시키는데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서

어젯밤엔 통장을 다 꺼내서 이리저리 계산해봤는데
적금 깨고 보험 해지하면 예식 비용에 조금 보태는 정도지 그 이상은 안 나와요

상견례 날짜 잡자는 연락이 왔는데 그것도 걱정이에요
사돈 될 분들 앞에서 저희가 뭘 해줄 형편이 안 된다는 걸 어떻게 꺼내야 할지
괜히 우리 딸이 그 집에서 아쉬운 소리 듣게 될까 봐 벌써부터 속이 타요
딸 친구 하나는 얼마 전에 결혼했는데 양가에서 집이며 혼수며 다 해줘서
부부가 몸만 들어갔다는 얘기를 딸이 아무렇지 않게 하는데 저는 그 말에 며칠을 앓았어요

주변에선 요즘 다 대출 끼고 시작한다 유난 떨지 마라 하는데
돈 없이 시작하는 부담이 신혼 생활을 어떻게 갉아먹는지 겪어본 사람은 알아요
사소한 거 하나에도 신경이 곤두서고 서로한테 못되게 굴게 돼요
저희 부부가 초반 몇 년 그렇게 싸웠던 것도 지금 돌아보면 다 쪼들려서였어요

딸은 그렇게 안 살았으면 좋겠는데
엄마라고 해줄 수 있는 게 밤에 잠 못 자고 마음 졸이는 것밖에 없네요
이런 마음으로 자식 결혼 보낸 엄마들 생각보다 많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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