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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이 유독 한글 문제만큼은 자신의 권위로 찍어눌렀을법한 이유


실록의 기록을 보면 세종이 신하들 앞에서 유독 한글 문제만큼은 본인이 즐겨하던 토론보다는
국왕의 권위로 찍어누르는 듯한 모습이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그래서 세종이 당시 집현전 부제학이었던 최만리와의 언쟁에서 이렇게까지 말할 정도죠.
"또 네가 운서(韻書)를 아느냐? 사성칠음(四聲七音)에 자모(字母)가 몇이나 있느냐?"
그래서 세종이 이 한글 문제에서만큼은 유독 조급함을 드러내는 거 아닌가 싶은 생각이 안 들 수가 없죠.


사실 세종은 고기를 좋아하고 일에만 매달릴 정도로 일 중독자인지라 운동이 부족해서 왕위에 오른지
20년이 훌쩍 지나버린 1440년 이후에는 당뇨와 그로 인한 합병증 증상이 서서히 세종의 건강을 위협하기 시작했습니다.
실제로 세종이 한글을 창제한 결과물은 훈민정음을 조선의 만백성 앞에서 당당하게 발표하던
1446년 당시의 세종의 건강 상태는 이랬습니다. 1446년이면 세종의 나이가 50세일 때였죠.

1446년 세종의 주요 건강 지표:
- 당뇨병 및 비만: 기름진 음식을 즐기는 식습관과 절대적인 운동 부족으로 인해 소갈증(당뇨)을 앓고 있었으며, 만성 피로에 시달렸습니다.
- 안질(시력 이상): 훈민정음 반포 전후로 당뇨망막병증과 백내장이 심해져 왼쪽 눈은 거의 실명 상태였고 오른쪽 눈의 시력도 극도로 저하된 상태였습니다.
- 전신 합병증: 당뇨와 대사 장애로 인한 전신 부종이 발생해 온천을 자주 찾아다니며 치료에 매달려야 했습니다.
1446년 당시에 당뇨의 합병증으로 의심되는 증상들을 앓고 있었으니
세종은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고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래서 이렇게 중차대한 일은 신하들과의 토론으로 몇년이 걸릴지도 모르는 지리한 시간을 낭비하기보다는,
국왕의 권위로 찍어눌러서 우선 자신이 죽기 전에 빨리 한글의 창제 및 반포 문제를 어떻게든
조속하게 마무리 짓고 보자고 생각했을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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